저자: 알랭 드 보통 / 정영목 옮김
출판사: 이레
출간: 2006년
<p.33>
그냥 복도를 따라 내려가 비행기에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몇 시간 뒤에 우리에게 아무런 기억이 없는 장소, 아무도 우리 이름을 모르는 장소에 착륙할 것이다. 오후 세 시, 권태와 절망이 위협적으로 몰려오는 시간, 감정에 깊은 크레바스들이 파여 있을 때, 늘 어딘가로 이륙하는 비행기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p.36>
비행기의 엔진은 우리를 이런 곳에 데려오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엔진들은 밖에 매달려 상상할 수 없는 추위를 견디면서도,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끈기 있게 비행기에 동력을 제공한다. 엔진의 안쪽 옆구리에 빨간 글자로 적혀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요구는 자신의 몸 위로 걸어 다니지 말라는 것과 "D50TFI-S4 기름만" 먹여달라는 것뿐이다. 그나마 이 메시지는 곧 만나게 될, 그러나 아직은 65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잠들어 있는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p.78>
만일 일에서 행복을 얻기가 그렇게 힘들다면,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내세우는 것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p.83>
이제 휴가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면, 일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쪽이 일을 견디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우리의 슬픔을 그나마 다독일 수 있을 테니까.
<p.110>
근대 세속 사회를 바라보는 한 영향력 있는 입장에 따르면,
'남들처럼' 되는 것만큼 창피한 운명은 없다. '남들'이란 평범한 사람들과 순응적인 사람들, 따분한 사람들과 교외에 사는 사람들을 아우르는 범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의 새로운 글이라기 보다는
작가 스스로 자신의 맘에 드는 부분을 골라 엮은, 말하자면 작가가 생각하는 베스트 모음이라고 할까.
이제 막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접하기 시작한 나로서는 그의 문체가 쉽지만은 않다.
워낙에 책을 천천히 읽는 정독 스타일임에도 여러번 곱씹어보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래도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다보면 사물(혹은 사람)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놀라게 된다.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쳐가는 것들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표현해내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이들을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내가 몇 번이나 무릎을 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