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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108 까롤 이야기
    일상/흔적 2010. 11. 8. 03:45
    웬만해선 내 블로그에서는 누구의 얼굴도 공개하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이번엔 이 친구의 얼굴이 빠지면 안 될 것 같다.



    이 친구 이름은 까롤이다.  - Carola Sandoval Valentin

    페루 뜨루히요에서 지내면서, 그녀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더 정확히는 뜨루히요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던 그녀를 한국어교육 K단원이 나와 연결해주면서, 
    html 태그를 몇 번 가르쳐주게 된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까롤은 웹 관련 일을 하고 있었고, 주로 플래시를 했다고 하는데 html을 알고 싶다 해서 만든 자리였다.)

    그 이후로 가끔 만났고, 몇 번 함께 술을 마시면서 친해졌다.
    - 특히 그녀는 소주를 정말 좋아했는데, 내가 그녀의 생일에 선물한 팩 소주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어느 날은 우리 집에서 그녀가 내게 선물해준 Grupo 5 디비디를 보며 밤새 춤추고 논 적도 있다.


    한국어를 좋아하고, 또 잘하기도 하는 친구였는데
    역시 좋은 성적을 받아 KOICA 연수생으로 2008년 하반기에 약 4개월간 한국에 한국어 연수를(또 다른 학생이었던 루비도 함께) 왔다.
    내가 2008년 임기가 끝나고 남미 여행을 하고 들어오느라 한국에서 그녀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는 나조차도 적응하기 전이어서 정신이 없던 터라, 페루에서 온 친구들을 한국에서 보면서도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친구 P는 이 친구들에게 삼겹살과 소주를 사줬고,
    친구 B는 아쿠아리움 외에 나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코엑스 스카이라운지에서 맛난 저녁과 와인을 쏴주셨다.
    그때 친구들에게 내가 제대로 인사를 했던가...?
    멀리서 온 얼굴도 모르던 내 친구들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줘서 이제 와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해본다.


    4개월의 한국어 연수가 끝나고 그들은 돌아갔고,
    벌써 2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이메일로 소식을 간간이 알며 지냈다.

    사실 까롤은 내게 중요한 이메일도 보냈었는데, 내 사정상 답을 하지 못했었다.
    그게 참 마음에 걸리고 미안했었는데 역시나 서운했던가 보다.
    내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다는 핑계로 그녀 외에도 페루에서 인연을 맺었던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마음먹고 하면 될 일을 여전히 마음의 짐으로 미뤄두고 있다.



    어쨌거나,
    그녀가 다시 한국에 왔다.
    한국이, 한국어가 좋아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며 다시 한국에 꼭 돌아오겠다,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 맨땅에 헤딩하며 한국의 대학문을 두드렸고, 
    결국 어느 기관도 통하지 않고 스스로 이번에 숙명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입학을 하게 됐다.
    지금은 어학코스를 밟고 있고, 내년에 정식으로 1학년에 입학한다.


    페루에 있었을 때, 아나 마리아라는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그 당시 한창 독일어에 빠져 있었을 때인데,
    뜨루히요엔 마땅히 독일어를 배울만한 곳이 없어
    매주 주말이면 8시간 밤 버스를 타고 수도 리마에까지 가서 3시간의 수업을 받고 다시 8시간을 버스 타고 돌아왔다.
    수도와의 왕복 버스비가 현지인들에겐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다행히 그녀의 아버지가 버스회사에서 일하는 덕분에 할인을 받아 다닐 수 있었다고 했다.

    그때, 그렇게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그녀를 보면서, 
    외국어를 필연적으로 해야만 하는 난 현지에 있으면서도 나태하게 굴던 나 자신을 반성했었다.
    그렇지만, 내 의지박약은 반성으로만 끝이 났고,
    아나는 꾸준히 리마로 독일어를 공부하러 다녔으며,
    까롤은 자신의 꿈을 위해 문을 두드려 결국 한국에 왔다.

    .
    .
    .


    #2010.11.04

    까롤은 9월 말에 한국에 왔는데,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미루다 이날 겨우 만나게 됐다.
    지하철 시청역 속에서 2년 만에 다시 만난 까롤과는그동안의 시간에 비해 덜 호들갑스럽게
    그렇지만, 진심을 담아 포옹과 베소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소주를 좋아하는 까롤이라, 첫 만남을 소주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요즘 내가 소주를 마시지 않는 터라 -_-;
    동동주의 세계를 알려주겠다며 회기역에 있는 동동주 골목으로 데려갔다.

    나도 참 오랜만에 가본 회기역 파전집.



    말해주지 않아도 술을 뜨면서 휘휘 젓길래
    혹시 전에 마셔보았느냐 물었더니
    가만히 두면 가라앉기에 저었단다. 
    얘는..조만간 나보다 더한 한국 사람이 될 것 같다.


    벽에 붙어 있던 소주 광고를 보고는,
    "'이겨라'가 무슨 뜻이야?"라고 묻는다.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근데, 왜?"라고 다시 물어 나를 폭소하게 하였다.

    "그러게! 왜 소주를 이길까? 나도 모르겠어~"


    까롤은 2년 전에 쓰던 지하철 노선도를 이번에도 가져와 사용하고 있었다.
    접는 곳이 찢어져 버린 낡은 지하철 노선도.
    지하철 역을 설명해주다가 영어로 된 글씨가 너무 작아서 내가 갖고 있던 노선도를 꺼냈더니
    자기 것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며
    영어라 못 읽는 것이라고 놀려댔다. -내가 영어 싫어하는 것, 안다;;-
    '나 참, 아무리 내가 영어를 몰라도 한국어 발음대로 써놓은 노선도를 모르겠니?'
    라고 말했지만, 까롤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까롤라와 지선이 여기 있었어요 ㅋㅋㅋ
    2010 11월 7일

    이곳 파전집엔 벽면에 온통 낙서로 도배되어 있다.
    그걸 보고는 그녀가 써 놓은 글이다.

    어두워서 제대로 찍지 못해 그나마도 잘렸다;
    이 안이 너무 어두워서 이날 찍은 사진은 다 이 모양이다.




    까롤에게 받은 꾸스께냐 맥주잔.
    지구 반대편에서 이렇게 깨지기 쉬운 물건을 챙겨오는 게 얼마나 신경쓰이는 일인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꾸스께냐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골라온 선물이기 때문에
    정말 고맙게 받은 선물이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그녀의 삶이, 대학 생활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되고, 진심으로 행운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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