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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120 신년계획은 언제 / 불가사의한 인간 / 내 생일 선물은 / 스물다섯 살이란
    일상/흔적 2011. 1. 21. 06:16
    #1.
    자고로 연말엔 그 해를 정리하고, 신년엔 새해를 맞이하여 방 정리도 하고, 지키지 못하면서도 매년 하는 계획을 세워야 해가 바뀐 기분이 드는데, 아직 신년계획은커녕 2010년 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2010년 13월에 있는 기분에 찜찜해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언제를 ‘그날’로 잡아 밀린 일을 처리하고 시작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으로 괴로워하던 요즘.

    그러다 문득, 지난해를 정리해봐야 그 과거가 다시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며,
    방 정리는 언제든 할 수 있고 (언제든 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이라면 일단 시작해보고 계획을 세워도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깔끔하게 ‘시작’ 또는 ‘끝’이라는 선이 분명하지 않으면 찝찝해서 견딜 수 없던, 그래서 그 핑계로 많은 시간을 낭비했던 병적인 습관/성격을 조금은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렇다고 지난해 마무리와 방 정리, 신년계획을 세우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고;;;;;;;


    #2.
    2009년 만큼 최악의 해는 아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우울한 2010년이었는데.
    20대 후반을 장식한 혼자만의 제주 여행에서 좋은 기운을 한껏 받고 온 덕분에 2010년의 마지막이 좋게 기억된다.

    <심리학 콘서트>책에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불가사의하게 잘 만들어져서, 슬픔이나, 공포와 같은 불쾌한 감정 자체는 시간과 함께 약해진다. 이와 달리 기쁨이나 행복감 같은 쾌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그다지 약해지지 않는다.”
    라는 부분이 있다.

    고통의 시간을 지나 정신적으로 많이 회복이 되었을 때에는 남의 일 이야기 하듯이 담담하게 지난 일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기뻤던 일은 말하면서 다시 그 즐거움으로 흥분되는 것을 보면 역시 인간의 존재는 참 불가사의하다.


    #3.
    소위 말하는 곗돈으로 이어지는 대학친구들 덕분에 매년 생일에는 일정 금액의 현금을 선물로 받는다. 물론 그에 상당하는 원하는 품목을 미리 말하면 해당 물건을 받을 수도 있지만 별다른 언급이 없으면 기본은 현금이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면 실용성도 좋지만 어떤 것이 좋을까 고민하는 시간, 고르는 정성이 가장 감동적이라는 내 개인적인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지극히 비지니스적인 시스템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모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모임을 핑계로 의무적으로라도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훌륭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매달 내는 회비가 수입 없는 백수에겐 상당히 부담스럽긴 해도, 회칙까지 있는 나름 조직적인(?) 모임이라 경조사 대비에는 상당히 효율적이다. 보험 같다고나 할까.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일 년에 한 번 받게 되는 현금 선물은 꽤 쏠쏠하다. 그 돈으로 갖고 싶던 드립 세트를 싸악 사들일까, 눈여겨 봐두었던 운동화를 살까 고민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 회비 낼 돈도 없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냥 그 돈으로 회비나 선납 퉁~ 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생파가 있던 날, 우연히 길에서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를 만났다.
    동네에서도 그런 분들은 쉽게 보는지라 특별할 것이 없었는데도 그날 유독 날이 추워 그랬는지 길가에 앉아 폐지를 정리하시던 할머니 모습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마침, 이번 달 회비가 밀렸다며, 이번엔 생일 선물로 회비를 퉁치는 일 따위는 없다는 총무님하의 협박 섞인 문자를 받았고, 생파에서 현금봉투를 받았더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추워서 길에서 전화가 와도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감히 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는 날씨에 폐지를 정리하시던 할머니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유일하게 내가 누군가를 위해 성금을 내는 때는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을 때다.
    2010년엔 그때가 여행 중이라 그마저도 넣지 못한 마음에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다 이제 와 돈을 기부-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지만-하기엔 마땅히 하고 싶은 곳도, 어디에 해야 할지도 몰라 더 막연했다. 
    뉴스엔 온통 국민 성금액이 비리로 엉뚱한 사람 주머니만 두둑하게 하는 꼴밖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후, 진짜 내 생일날에 나 대신 좋은 곳에 써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돈을 건넸다.
    그 돈은 결코 많은 돈은 아니다.
    그런데, 내 욕심을 줄이고 얻은 마음의 기쁨은 그 돈의 가치를 초월한다.
    게임에서 이겼을 때나 원하던 것을 이루었을 때의 짜릿함보다도 강력했다.

    요즘의 나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전혀 다른 세계의 것들로 고민한다.


    #4.
    까롤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해줬는데, 즐거워하면서도 ‘un cuarto de siglo’라는 표현으로 슬퍼했다. un cuarto de siglo = ¼ 세기라는 뜻이다.
    우리가 25세를 꺾인 50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얘네들은 4분의 1세기나 살았다며 농담 섞인 푸념을 하는 것이다.

    콧방귀 한 번 뀌어주고, 살짝 째려보며 “얌마, 난 올해 서른인데. 나 참.”
    이랬더니 '서른은 수많은 생일 중의 하나’이지만, 자기는 ‘4분의 1세기가 지난 25세’라나.

    한국 여성이 갖는 30이라는 나이의 상징적인 의미를 설명해주기에는 내 정성과 어휘력 모두가 부족했다. ㅡ,.ㅡ

    스물다섯이나 서른이나.
    고만고만한 것들이 나이 타령이니. 그 대화를 들은 어르신이 없기에 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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