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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지 못하면 남자가 아니래요
    일상/흔적 2007. 11. 24. 17:04

    연말이면 카드값 때문에 그렇-게- 싸운다고-.
    이해를 못하는 거야.
    어디다 그렇게 쓰고 다니냐는 거지.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럼 먹는 걸 줄일까?
    줄일 건 먹을 것 밖에 없는데?
    나는 입때껏 오뎅 하나 혼자 사 먹어 본 적이 없다고.

    그렇지 이해를 못하지.
    어디다 썼냐고 그러지.

    그러니까.
    그래봤자 애들 옷값이지 뭐.
    그런다고 내가 뭐 비싼 거나 입히는 줄 알아?
    마트에서 세일할 때 만원 이만원짜리 줏어오는 걸.
    그렇다고 뭐 병원비를 줄이나?
    꼬박꼬박 나가는데 아들 병원비를 어떻게 줄여.
    휠체어에, 뭐 검사한다고 30만원에.
    접때도 금방 100만원이 넘더라고.
    그게 현금이 어디있어. 카드로 긁고 또 어디서 메우는 거지.

    그렇지 카드밖에 없지 뭐 우리가.

    연말이면 병원비 내라고 막 쌓이는데
    계속 돈내놓으라 소리도 못해.
    버는 거 빤히 다 아는데 나도 어떻게 맨날 돈 없다 소릴해.

    환자의 보호자 둘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한 보호자분께서 불쑥, 카드값 이야기를 꺼내었다.
    나는 곁에 앉아있다가, 어쩐지 엿듣는 표정을 들킬까 싶어
    등을 돌려 앉았다.

    얼마 후
    내 차례가 되어 물리치료실 안으로 들어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연말의 카드값 걱정이 크던 그 집안의 아들은
    저 안 쪽 방에서 이제 막 치료가 끝났다.

    이제 고작 초등학교 4학년 되었을까,
     "이기지 못하면 남자가 아니래요"

    라며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나서는 그 아이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벙긋 번졌다.

    그러다 그의 어머니와 눈을 마주쳐 함께 소리내지 않고 웃다가
    그와 그의 어머니가 치료실을
    천천히,
    완전히 나서자
    몹시 서글픈 마음이 되어 홀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친구놈의 '푸네스의 병원 노트'(http://www.cyworld.com/pseudo_hea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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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지 못하면 남자가 아니래요"

    이 말이 왜 내게는 "이기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래요" 이렇게 들렸을까.
    우리는 어느 덧 어떤 상황을 이겨내야만 하는, 그래야 인정받는 사람들로 교육받아지고 있던거야.

    때론.
    남자라도. 여자라도. 사람이라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이 있기 마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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