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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80622: 멘도사(Mendoza)] 경찰차를 타다. 대낮 길 한복판에서 만난 날치기
    여행:: 남아메리카/08' Argentina 2008. 7. 22. 03:30

    ☆ [2008년 6월 22일: 멘도사(Mendoza), 아르헨티나]


    일요일.
    요즘은 요일 감각도 없다. 하루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슬슬 멘도사 시내를 둘러보려고 했는데 그 마저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을 찾기도 힘들고 조용하다 못해 마치 죽은 도시 같다.



    마실 나온 사람마냥 슬슬 걷다 보니 산 마르띤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이 꽤 넓어 다 보지는 못하고 입구 근처만 살짝 돌다 나왔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쭉 이어지는 가로수 길은 단풍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보는 단풍이야?
    2006년 5월에 출국했으니, 3년 만에 보는 단풍이다.
    아..나뭇잎의 색이 변한다는 게 이렇게 신기하고 멋질 수가.




    일요일이라 문을 연 상점을 찾기도 힘들고,
    그나마도 일찍 닫아버려 점심을 먹기 위해 서둘러 센트로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올리비아가 지르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시커먼 옷을 입은 남자가 올리비아의 카메라를 낚아채서는 도망가고 있었다.


    이게 지금 뭐야? 말로만 듣던 날치기?
    너무 한 순간의 일이라 당황스러워 순간 멈칫거리는 찰나 올리비아가 날치기의 뒤를 쫓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저렇게 쫓아가면 안 되는데;;
    멀어지는 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도 달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분명 뒤에 한 놈이 더 있었다.
    올리비아가 소리를 질러서인지, 우리가 뛰어 쫓아가서인지 다른 한 명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앞에 도망가는 녀석은 잽싸게 벌써 저만치 도망가고 있었다.


    코너를 두 번 정도 꺾었으니 두 세 블록을 쫓아 뛰었나 보다.
    도망가던 녀석은 이미 눈앞에서 사리지고 없었고, 올리비아는 어떤 아줌마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야? 다친데는 없어?”
    “쫓아가다가 너무 숨이 차서 놓쳤어. 이 아줌마가 어떤 남자가 고양이처럼 저 담을 훌쩍 뛰어넘어가는 것을 봤대.”


    신문을 팔던 아줌마는 순식간에 담을 넘어 뛰어들어가는 한 남자를 봤다며 분명 저 안에 아직도 있을 거라 했다.
    거리에는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적막만 흐르고 있었다.
    아줌마에게 물어 근처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 갔으나 찾지 못했다.


    다시 돌아가니 아줌마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 아직도 그 사람이 저 안에 있을 거다. 왜 경찰서를 찾지 못했느냐,
    한 사람은 자기와 함께 여기를 지키고 한 사람이 다시 가서 경찰을 불러와라"..라는 이야기를 했다.


    순간 우리는 이 아줌마도 한 패 아냐? 라는 의심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꾸 둘을 찢어 놓으려는 식으로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의심은 가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내가 그 곳에 지키기로 하고 올리비아가 다시 경찰을 찾아 나섰다.
    아줌마와 단 둘이 아무도 없는 골목에 남게 된 나는 대 낮에도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았다.
    어디선가 그 날치기들이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동양인을 찾기 힘든 이 곳에서 이미 그들은 우리를 알고 있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줌마의 남편이 저 멀리서 나타났다. 두 분은 이 근처에서 매일 아침 신문을 팔고 계신다고 했다.
    아저씨, 아니 거의 할아버지 같은 분이 등장하면서 나는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아저씨의 눈에서 진정으로 걱정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올리비아는 이번에도 역시 혼자 다시 돌아왔다.
    경찰서는 찾았는데 점심때라 그런지 문이 잠기고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다들 점심 먹으러 갔니?? ㅡ,.ㅡ


    이제 그냥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순간 마침 경찰차가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저씨는 그 경찰차를 잡아 상황 설명을 했고, 경찰들은 차에서 내려 주차장 같은 그 공터를 넘어 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안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어쩔 수 없구나..생각했는데 내부를 계속 수색하던 경찰..
    잠시 뒤 손에 흙이 잔뜩 묻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게 아닌가?
    땅 속에 묻혀있었다 했다. 일단 묻어놓고 도망갔던 것 같다.
    올리비아는 카메라를 크로스로 메고 있었고,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방심하고 그대로 메고 걷다가 당했었다.
    다행히도 무사히 카메라는 찾았고, 다치지도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우리를 도와주었던 아줌마와 아저씨는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고, 자기들은 매일 아침 이곳에서 신문을 팔고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오라며, 아저씨는 눈물까지 글썽이셨다.
    한 순간이나마 이 분들을 의심했던것이 너무 죄송스러웠다.


    경찰들은 카메라를 돌려주기 위해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경찰서 동행을 요구했다.
    그래서...
    덕분에? 난생 처음 경찰차를 타보는 경험을;;



    안에서는 열 수 없는 경찰차의 뒷 자석은 플라스틱으로 되어있어 불편했다.
    앞에는 철조망으로 막혀있고, 수갑을 채울 수 있도록 손잡이가 3개 있었다.
    졸지에 꼼짝없이 경찰차에 연행되어가는 꼴이 되어버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동양 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나 싶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ㅡ,ㅡ


    추운 경찰서 복도 의자에 앉아 두 시간을 보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절차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내 증언도 필요하다기에 졸지에 부모님 이름과 한국 주소까지 적어가며 조서를 작성했다. 참..별 일을 다 겪는다;;


    어쨌거나, 무사히 모든 게 마무리 되었다.
    약간 느슨해져 가는 긴장도 다시 가다듬게 되었고, 앞으로 경계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나저나, 칠레 마지막 날 큰 맘 먹고 비싼 돈 들여 질러주었던 팔찌는
    날치기를 뒤 쫓다가 떨어뜨렸는지 내 손목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흑. ㅠㅠ


    그래도..아무도 안 다쳤으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날치기를 당한 그 거리 이름이 칠레였다. 역시 칠레는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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